에티오피아 커피 세레모니, 그 경건하고도 매혹적인 의식에 대하여
맛있는 식탁 따끈하고 검은 액체를 한 모금 넘기면, 금세 기분이 좋아짐과 동시에 감기던 눈이 번쩍하고 뜨이며 불끈 에너지가 솟는! 마법의 음료, 커피. 요즘은 세계 유명 커피 전문점과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만 판매하는 카페, 생두를 바로 볶아주는 로스터리 등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 제법 흔해졌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커피의 발생지인 에티오피아 분나(Bunna, 커피를 뜻하는 암하라어)의 맛과 향에 비할 수는 없다. 정성스레 직접 볶고 빻아 만든 커피 한 잔에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사랑, 기원, 존경 등 모든 긍정적인 기운마저 서렸으니.커피 아니고 분나(Bunna)에티오피아를 다녀온 후, 내게 커피는 딱 두 가지로 분류된다. 에티오피아 커피 그리고 나머지들. 물론 커피는 기호 식품이니, 맛의 호불호는 개인 취향에 따라 갈릴 수 있겠다. 그래도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이 커피를 잘 안다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이가 유명 바리스타든, 로스터이든, 카페 사장님이든 혹은 커피 애호가든 간에. 여기서 내가 말하는 에티오피아 커피 는 게이샤(Gesha, 커피의 품종 이름)나 예가체프(Yirgacheffe) 같은 고급 아라비카 품종 커피가 아니라, 분나를 뜻한다. 에티오피아 전통 방식으로 볶고 갈아서 끓여낸, 걸쭉한 그 커피 말이다.분나는 그 어느 커피에서도 본 적, 맛본 적, 맡아 본적 없는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짙은 고동색으로 끓여 나온 커피는, 굳이 향을 맡으려고 온 신경을 코에 집중하지 않아도 강한 아로마가 팡팡 터진다. 혀끝에 닿자마자 자연스러운 단맛, 톡 쏘지 않고 은은한 신맛, 희미한 짠맛, 견과류의 고소한 맛, 등 딱히 꼬집기 힘든 온갖 풍미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한꺼번에 입안을 감돌아 친다. 잔을 비우고 난 후에도 텁텁하지 않은 뒷맛에 매료되고 만다. 정말, 아주, 맛있다.최소 삼시 석 잔, 커피의 왕국 커피 마셨니? , 커피 마실래? , 커피 줄까?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다. 흡사 우리나라의 밥은 먹고 다니냐? 수준이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상대방의 안부를 묻는 인사이자 배려이고, 친근함의 표현이며 마음 씀이다.커피의 발생에 대한 에티오피아 전설은 잘 알려져 있다. 6~7세기경, 목동 칼디(Kaldi)가 키우던 염소들이 처음 보는 붉은 열매를 먹었는데, 밤이 늦어도 잠은 안 자고 춤추듯 뛰어다니며 힘이 넘쳤다. 이를 본 칼디도 그 열매를 집에 가져와 물에 끓여 마셔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졌다. 신기한 식물을 발견했다는 기쁨에 이슬람 수도사들에게 알렸으나, 이들은 악마의 열매 라 여기며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불에 타던 이 열매로부터 더 향기롭고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 이게 바로 커피의 탄생이다. 제법 그럴싸한 설화 속 칼디가 실제 존재했는지는 밝혀낼 방법이 없다. 단지 에티오피아는 실제로 커피가 쑥쑥 자라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 즉 해발 2,000m 이상의 고산지에 사시사철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기후라는 점은 확실하다. 아마 그래서 칼디의 염소들이 이 커피체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해 섭취했을 것도 같고. 더욱 분명한 건, 에티오피아인들이 커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소중히 여기는지를 그들만의 독보적 문화를 통해 알 수 있다는 점이다.에티오피아는 전 세계 커피 생산지 중, 커피를 마시는 고유한 문화를 지닌 유일무이한 국가다. 이는 분나 마프라트(Bunna Maflat) 즉, 커피 세레모니(Coffee Ceremony) 라 부른다. 생두를 씻고 볶는 것에서 시작해, 커피를 다 마시기까지의 과정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치 종교의식처럼 경건히 행하는 것이다. 하루 중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대부분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중간에 주로 한다. 세레모니 한 번에 기본 석 잔 정도 마시는 게 관례이므로, 만약 그날 모임이 두 군데에서 있다면 적어도 커피를 여섯 잔은 마시게 되는 셈. 분나 마프라트는 집에서 가족끼리 도란도란 시간을 보낼 때도 하지만, 길을 가다가 혹은 상점에 들어가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렇듯 특별한 방식으로 커피를 마시는 건,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이벤트라기보다 일상에서 찾는 여유인 것이다.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커피 예식커피 세레모니를 하려면 주변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먼저 세레모니 할 장소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다음에 환영과 행운의 의미로 케트마(Ketema)라 불리는 나뭇잎을 깔고, 그 위에 레케봇(Rekebot)이라는 작고 나지막한 상을 차린다. 상 위에는 손님 수대로 스니(Sini)라 불리는 작은 커피잔을 올려주면 준비 끝. 오직 여성만이 커피 세레모니를 주관할 수 있다. 커피 세레모니 순서 1. 로스팅(Roasting)우선 커피를 로스팅하기에 앞서, 꽤 강한 향을 피운다. 이는 주변의 잡내를 없애 커피의 향이 더 도드라지게 하기 위함이다. 곧이어 깨끗하게 씻은 녹색의 생두를 멘케쉬케쉬(Menkeshkesh) 라는 손잡이가 긴 팬에 넣고, 작은 화로 위 숯불에 올려 천천히 수제 로스팅 과정을 시작한다. 팬을 달그락거리며 커피를 볶는데, 불 조절을 위해 부채질은 필수다. 연한 녹색을 띠던 콩의 색이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타지 않게 주의해 살펴봐야 한다. 커피의 로스팅 정도는 로스터, 즉 세레모니를 주관하는 여인의 마음대로다. 따라서 커피 맛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보통은 커피 콩 두 군데 정도에 갈라짐(crack)이 보이고 커피에서 자연 기름이 배어 나와 표면이 번들거리면, 팬에서 내려 식힌다.2. 추출(Brewing)로스팅이 끝난 커피는 무케차(Mukecha) 라는 나무 절구에 넣어 직접 빻는다. 이때부터 고소하고 강한 커피 향내가 진동을 한다. 커피 가루가 곱게 빻아지면 제베나(Jebena) 라고 불리는 목이 좁고 검은 주전자에 넣고 끓인 물을 붓는다. 커피 가루와 물이 잘 섞이게끔 커피를 잔에 따랐다 다시 제베나에 넣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 후, 다시 화롯불에 얹어 수 분간 끓인다. 주전자 주둥이로 김이 솔솔 피어오르면, 커피가 완성된 것이다.3. 커핑(Cupping)커피 가루는 반드시 제베나 아래에 모두 가라앉아 있어야 하므로, 주전자를 살짝 기울여 둔다. 진행자는 커피를 붓기 전, 손님들에게 설탕을 넣을 것인지 묻는다. 에티오피아인들 대부분은 설탕을 티스푼으로 두 개 정도 넣어 마신다. 간혹 떼나 아담(Tena adam) 이라는 잎사귀를 넣기도 하는데 더 가벼운 맛을 내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이후 미리 준비해 뒀던 스니 컵에 커피를 따르는데, 가능한 주전자를 높이 들어 거품을 많이 낸다. 이렇게 하면 커피 맛이 더 좋아져서다.커피 세레모니를 하면 석 잔은 기본으로 마시는 게 예의다. 첫 잔은 아볼(Abol) , 두 번째는 타우나(Tawna) 그리고 마지막 잔은 버러카(Baraka) 라 한다. 카페인 과다 섭취로 이어질까 걱정이겠지만 첫 번째 잔 이후 두, 세 번째는 기존의 커피에 물을 더 부어 마시는 거라 맛이 점점 희석되고 약해진다.세레모니 한 번에 소요되는 시간은 보통 한 시간 반에서 길게는 두 시간. 중간에 대화라도 한다 치면 시간은 더 늘어난다. 만약 에티오피아 지인이 우리 커피나 한 잔 할까(Nu Bunna Tetu)? 라 물으면 재빨리 마시고 헤어질 거라는 생각은 아예 접어라.세계에서 커피를 가장 잘 알고 또 오랫동안 마셔온 에티오피아인들. 그들에게 커피란 민족의 자부심이자 정체성, 또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수단일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오랜 속담이 이를 한 마디로 평한다. 분나 다보 나우(Buna dabo naw). 직역하면 커피는 우리의 빵이다 .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커피는 양식이 될 만큼 중요하게 치부되는 황금의 열매인 것이다. 인류와 커피의 탄생지인 에티오피아. 이곳에서 그들은 오늘도 권태로운 삶 속, 아로마 테라피를 하듯 커피 향을 맡고 힘차게 살아가는 중이다.글 서혜원 ∥ 사진 한상무
길 위에서 만난 그들의 삶을 담담히 기록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초롱 작가
영감이 흐르는 KOICA 길 위에서 만난 그들의 삶을 담담히 기록하다월드프렌즈코리아 코이카 봉사단원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초롱 작가 놀이터_1 / 판화지에 수묵담채 / 560x370mm / 2019월드프렌즈코리아 코이카 봉사단원 출신으로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활동 후, 귀국하여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박초롱 작가의 개인전이 지난 4월, 충무로의 한 갤러리 카페에서 열렸다. 여행자의 노트 라는 주제 아래 개최된 공모전에 선정되어 진행한 이번 개인전은 박 작가가 르완다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그려낸 작업들을 모아 전시했다. 오랫동안 작가의 내면에 묵혀두었던 빛바랜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과거 예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소묘를 가르치던 박초롱 작가는, 그림이 입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 이 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예술이 어떠한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즐거울 수 있기를 바랐던 박 작가는 순수하게 미술을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역량을 나누고자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개도국에서 미술교육을 할 수 있는 코이카 해외봉사단에 지원하여 2012년 아프리카 르완다로 떠났다.르완다의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1시간이나 1주일에 한 번 있는 자율학습 시간에 미술 수업을 진행했고, 그 외에 동화책이나 동요 등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다른 분야의 단원들과 협업하며 재능을 펼쳤다.행려풍속도 / 디지털프린팅 / 2100x594mm / 2019르완다에서의 활동은 박 작가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아름다운 풍경과 평화로운 일상. 그곳 사람들의 모습은 작가의 뇌리에 깊게 남았다. 귀국 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 때문에 르완다와 관련된 작업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수도를 오가기 위해 2시간동안 몸을 실었던 버스 안에서 보던 창밖의 풍경들은 모든 장면 장면이 기억에 박혀 있는 것 같아요. 르완다의 풍경을 그려내는 작업은 제가 간직하고 있는 감정들을 풀어내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지만, 제 작품을 통해 개도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위) Intore / 디지털프린팅 / 1920x1080 pixel / 2017(아래, 왼쪽부터) Muteteli / 포장지에 크레파스 / 210x297mm / 2013, Uwimana / 포장지에 크레파스 / 210x297mm / 2013우리가 흔히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개도국의 모습은 열악한 환경 속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극단적인 단면을 강조한 자극적인 장면은 보는이로 하여금 동정심을 일으키는 동시에 개도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도 한다.하지만 그들의 삶 역시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는 박 작가는 그곳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담담히 기록한다. 우리는 김홍도의 풍속화를 통해 조선시대의 생활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편견 없는 따뜻한 시선에 비친 인물들의 일상을 보며 당시의 삶이 현재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지요.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길 위의 풍경들과 길 위에서 만난 모습들을 담담히 기록하는 것, 그것이 저의 작품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박초롱 작가는 현재 개인전에서 공개한 작품을 포함하여 르완다 해외봉사활동을 하며 만난 사람과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엮은 삽화집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또 짧게만 느껴졌던 르완다에서의 2년이라는 시간이 아쉬워 언젠가 다시 르완다로 갈 계획 역시 가지고 있다.코이카 해외봉사를 통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지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세계와 개인이 무한한 가능성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박초롱 작가. 그는 코이카 해외봉사가 자신이 갇혀있던 지역적, 장르적 한계를 넘어서 더욱 넓고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놀이터_3 / 판화지에 수묵담채 / 560x370mm / 2019 봉사활동이라는 것은 단순히 내가 가진 능력으로 타인을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르완다에서 보낸 2년의 시간동안 받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아 돌아오는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저에게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었고, 그곳에서의 경험들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도 개도국이 간직한 아름다운 풍경과 긍정적인 일상의 모습을 저만의 방식으로 그려내고 싶습니다. 키갈리로 / 판화지에 수묵담채 / 370x560mm / 2019글 남지연 ∥ 사진 김희진
스마트폰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 ‘미술’을 가르치는 미술 교사
뷰티플 KOICA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이보라 월드프렌즈코리아 코이카 봉사단원 색색의 크레파스, 물감, 도화지, 색종이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이것저것 만들던 우리네 미술 시간. 그런데 에티오피아의 상황은 달랐다. 실기 없이 글로만 배우는 미술 수업. 그것이 공립학교 미술 교육의 실상이었다. 한데 아디스아바바 히브렛피레초등학교(Hibret Firre Primary School)의 환경은 달랐다. 아이들의 예술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교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물감 냄새가 확 풍겼다. 아이들이 게임 이라 표현할 만큼 재미있는 이보라 단원의 미술 수업. 창의력, 사고력의 발달과 더불어 미술을 통한 인격 형성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진화하는 중이다.Q. 에티오피아 히브렛피레초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파견된 과정을 알려주세요.한국의 미술학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막연히 해외 미술 교육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코이카(KOICA) 봉사단에 대한 내용이 제 눈에 확 띄더라고요. 제 마음을 이끄는 무언가 있어 고민도 않고 지원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2018년 11월, 코이카 봉사단 126기로 에티오피아에 오게 됐습니다.Q. 미술 수업은 아무래도 도구나 커리큘럼 등 준비할 게 많을 것 같은데요?에티오피아에 오기 전, 현지에 한지나 먹 같은 한국 미술 재료가 없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 가져왔습니다. 또 학기 초반에는 학생들과 제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아무래도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 언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퍼포먼스 미술 수업이라든지, 종이접기를 통한 게임 같은 것이었죠.Q. 히브렛피레초등학교는 어떤 곳인가요?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예카 지역에 6.25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이 모여 사는 한국 마을(Korean Village) 에 열악한 학교가 있었는데 2005년 코이카의 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히브렛피레초등학교를 다시 건립하게 됐습니다. 교육을 통해 에티오피아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진정한 원조를 행하는 선택이었죠. 덕분에 학교 시설이 아디스아바바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좋아요. 약 150명의 교직원이 근무하고, 1,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정규반에 또 300명이 넘는 수가 야간반에서 교육 받고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 대부분은 6.25 참전용사 후손들입니다.Q. 에티오피아의 미술 교육 환경은 좋은 편인가요?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해요. 에티오피아 미술 수업 평가를 해 보니, 실기는 아예 제외된 이론 위주의 커리큘럼만 존재했습니다. 듣고 쓰며 외우는, 책 속 지식만 가득한 미술 수업이 재미있을 리가 있나요? 이런 상황 속에 실기 위주의 방과 후 미술 교실이 열린다는 공지를 하니, 아이들의 호응은 엄청났고 제 수업을 들으려는 열기가 뜨거웠습니다.Q. 단원님이 진행하는 방과 후 미술 교실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히브렛피레초등학교의 미술 수업은 두 가지로 운영됩니다. 정규과정의 미술 수업은 이론만으로 진행되고 제가 맡은 방과 후 미술 수업은 실기 위주입니다. 세 팀으로 나누어 팀당 10~15명의 학생으로 구성했고, 팀당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합니다. 이론을 아예 안 가르칠 수는 없는데, 초반에는 언어 문제로 인해 진행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조건 퍼포먼스 수업만 했죠. 풍선을 불어 던지고, 분필로 그림을 그려 게임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동 미술 교육은 무작정 종이와 물감을 주고 그림 그려! 라고만 해서는 안 되거든요. 아이들의 창의적 생각과 마음을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미술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질의응답 과정은 필수죠. 결국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잘해야 돼요. 다행히 제 암하라어 실력이 조금씩 늘어 이건 뭐야? , 뭘 표현하려 이렇게 그렸니? 같은 질문 정도는 가능하게 되었답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여요.Q. 실기 위주의 수업이라면 주로 어떤 것들을 가르치며, 또 이를 통해 학생들의 어떤 부분을 성장시키고 싶으신가요?지난주에 했던 수업을 예로 들게요. 커다란 도화지에 학생 한 명을 뉘어 놓고 그 애의 몸을 본뜬 다음, 얼굴이나 옷 같은 것은 조원들끼리 상의를 해서 창작한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또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같은 도형을 다양한 크기로 잘라 아이들에게 연상되는 것을 그리라고도 했지요. 그러자 아이들은 삼각형을 모자나 지붕으로, 동그라미는 얼굴이나 공 등으로 변형해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창의력과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싶었습니다.보통 아이들은 어떤 한 학생이 그림을 잘 그렸다 싶으면 그걸 따라 하는 경향을 보여요. 그런데 그때 만약 혼자서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 아이가 있으면,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일부러 칭찬을 많이 해 줍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서서히 아이들의 독창성이 길러지게 된답니다. 인체 그림, 뼛조각, 해골 등을 본떠 그리는 수업도 했어요. 가능한 다양한 방면의 예술에 노출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Q. 아이들이 특별히 흥미를 보이거나 참여도가 높았던 부분이 있다면요?솔직히 모든 수업에 열성을 보입니다. 실기 수업 자체가 없다 보니, 아이들 흥미가 최대치랍니다. 따라서 수업 태도가 나쁜 경우는 보기 힘들 정도예요. 물론 그래도 아이들이다 보니 예의범절이 부족하거나 수업에 집중 못 해 낙오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해요. 처음에 암하라어가 익숙하지 않을 무렵에는 반장을 선출해 통제하도록 했더니 효과가 꽤 좋았어요.Q.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장 보람되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또 가장 힘들었던 때는요?다른 선진국의 아이들과 달리, 에티오피아에는 그 흔한 컴퓨터 게임도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고 붙이는 예술 활동을 게임하며 노는 것으로 여겨 너무 재미있어 하고 즐깁니다. 그렇다 보니 매일같이 보람을 느껴요, 정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제 수업을 듣겠다고 함박웃음을 하고 뛰어오는데, 그 모습을 보면 사명감이 더욱 증대되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답니다.힘들었던 부분은 학기 초, 아이들이 제 눈을 속이며 도둑질했던 일입니다. 눈물이 날 만큼 실망감이 컸어요. 하지만 당시 아이들은 교실에 있는 물건을 가져가는 게 크게 나쁜 일이라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전 아이들에게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물건을 훔치는 건 정말 나빠. 또 이러면 다음 수업은 없을 거야. 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제야 아이들은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심각성을 깨닫더라고요. 이제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지우개 한 조각도 제게 가져다준답니다.Q. 에티오피아에서 미술 교육 봉사를 한 지 약 9개월 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달라졌거나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요?아프리카에 처음 왔을 때는 다른 인종들 사이에서 낯설고 두려운 마음으로 길을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해져서 어디든 편안히 다닌답니다. 또 이곳에서 동양인 여자로 살아가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들이 배려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Q. 마지막으로 단원님의 추후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에티오피아는 영어 교육이 중요합니다. 8학년 국가시험의 경우도 국어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영어로 시험을 봅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돼 영어 수업을 못 받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음 학기에는 영어와 미술을 결합한 통합 교육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자세한 커리큘럼은 고민 중이고요. 한 가지 더, 원래 1년이던 계약 기간이 끝나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더 연장할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에티오피아에 더 오래 남고 싶어졌네요. 글 서혜원 ∥ 사진 한상무
희망을 향해 홈런 볼을 날린 에티오피아 최초 야구단 'HOPE'
세상을 바꾸는 KOICA 벌써 6시간째. 아디스아바바의 LG-KOICA HOPE TVET COLLEGE 잔디밭에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던지고, 치고, 달리기를 반복 중인 열다섯 명의 소녀들이 있다. 점심 때가 훌쩍 지났는데도 그들은 에티오피아 산양 왈리아(Walia Ibex) 마냥 폴짝폴짝 힘차게 잘도 뛴다. 땅에 슬라이딩은 또 얼마나 자주 했는지, 밝은 비둘기색이던 유니폼은 어느새 테라코타색으로 군데군데 얼룩졌다. Ten times! 한 선수가 훈련 중 잠시 딴전을 피우는가 싶더니, 어김없이 김윤호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지명된 학생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맨땅에 손을 짚고 흐트러짐 하나 없는 정자세로 팔 굽혀 펴기 10번을 해낸다. 칭얼칭얼 군소리 내거나 원망을 할 듯도 싶은데, 얼굴에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묵묵히 벌칙을 수행한다. 야구 불모지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맨 처음으로 야구를 하고 또 전파하려 노력 중인 선구자들답게, 패기가 넘친다.여성이 야외에서 땀을 흘리며 운동을 즐긴다는 건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적어도 이 나라에서는 그렇다. 더군다나 딱딱한 공을 던지고 무기 같은 방망이를 휘두르며 뛰는, 사내들이 하기에도 꽤나 거칠 법한 운동을 여성이 한다는 건 정말이지 생경하다.매주 일요일, 에티오피아 한인 야구팀과 친선 경기라도 할라치면, 이를 구경하려는 현지인들이 몰려들어 운동장을 에워싸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제가 LG전자 에티오피아 지사장으로 부임해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 야구단을 창단한 초창기 때만 해도, 야구공에 맞아 겁을 집어먹고 울음보를 터트리던 녀석들이었는데 이제 제법 야구 선수로서 모양새가 갖춰졌네요. 제가 3년 치 주말을 모두 반납해가며 훈련시킨 보람이 있습니다. 행여 팔불출 소리라도 들을까 말을 아끼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은 일반 여학생들과는 달라요. 선수 중 11명이 졸업생이고 모두들 직장을 다니는지라 가끔 찾아가 일은 잘하고 있는지 체크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상사들이 칭찬 일색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야구를 하지 않는 타 직원들에 비해 정신력과 태도가 월등하다고 말이죠. 사실 놀랍지는 않았어요. 괴롭고 고된 훈련을 참고 견뎌낸 장본인들이니까요. 저는 우리 아이들을 믿습니다. 강한 체력, 정신력 그리고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앞으로 살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극복해낼 수 있다는 걸요. 전 팀원 중 키도 가장 작고 말랐지만, 모든 팀플레이의 상징인 유격수(short stop)예요. 백업 플레이, 협력 플레이를 하며 수비에 온 힘을 쏟느라 연약해 보이는 제 두 다리, 양팔, 그리고 커다란 두 눈은 잠시도 쉴 틈이 없죠. 야구를 왜 하냐고요? 세상에, 야구보다 더 재밌는 건 없으니까요! 신기한 건, 하면 할수록 그 재미가 점점 증대된다는 거예요. 얻는 것도 많고요. 야구를 하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저는 많은 걸 습득했고 이를 통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시간에 대한 제 관념은 180도 변화했죠. 1초 안, 혹은 1분 안에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야구를 하며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큰 변화. 정말 놀랍지 않나요? 예전에 경기 중 손가락이 부러진 적이 있었어요. 그 때문에 한 6개월 고생했죠. 네 맞아요. 잦은 부상에,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고역이고, 새로 시작하고 싶은 분야의 공부도 야구와 병행할 자신이 없어 후일로 미뤄둔 상태지만 단 한시도 야구를 관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파고든 적은 없지요. 그거 아세요? 에티오피아에서 야구 역사를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사람은, 남성이 아닌 저희 여성이라는 걸요. 전 세계적으로 야구가 남자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또 에티오피아에 남존여비 사상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고려했을 때, 여성 야구단의 발족은 나라를 들썩일 만큼 제법 놀라운 행보였습니다. 때문에 저희 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에티오피아에 야구라는 새 스포츠를 계속해서 알리고 전파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야구를 합니다. 제 포지션은 투수예요. 그런데 김윤호 감독님께서 종종 투수는 모든 것이다 라고 말씀해 주셔서 더욱 어깨가 무겁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저는 팀을 이끌어 가야 하는 주장이기도 해요. 항상 모두를 서포트하고, 좋은 팀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죠. 가끔 책임감에 힘이 들 때도 있지만, 야구는 가능한 오래 할 겁니다. 저에게 야구는 단순히 하나의 운동 종목이 아니니까요. 야구는 제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또 업무에도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줬는걸요. 제 정신력이 어느 정도로 강한지 가늠이 안 되시죠? 저는 회사 내 부서에 오직 한 명인 여직원인데, 거친 남자들과 부딪혀가며 일할 때 전혀 기죽지 않습니다. 그들보다 뒤처지는 일도 없고요. 그런 자존감, 자신감, 정신력. 모두 야구로부터 배웠답니다. 저는 야구를 사랑해요. 야구를 하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다친다 해도 겁나지 않아요. 한번은 경기 중 플라이 볼이 왔는데 공에만 집중하고 서로를 못 봐, 캐처와 심하게 부딪힌 적이 있었어요. 상대 선수가 헬멧을 쓰고 있었던지라, 제 이마가 많이 찢어졌죠. 갑자기 꽝! 하고 피가 많이 났던 것만 기억나고 그 후 기절해서 다른 건 몰라요. 감독님이 저를 둘러업고 병원까지 뛰어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깨어보니 이마 봉합 수술은 이미 끝났고, 전 그저 야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답니다! 얼굴에 상처가 나다 보니 부모님은 걱정하셨지만, 어떤 일이 닥쳐도 제가 야구를 그만두지 않으리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어요. 결국 제 설득에 못 이기는 척 허락해 주셨고, 이제는 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죠. 글 서혜원 ∥ 사진 한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