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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조희진
2019.02.15
3139
2019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기조연설
이미경 KOICA 이사장
2019.02.14.(목)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1. 머리말
안녕하세요.
저는 1년 전 KOICA 이사장에 취임하면서,
“KOICA가 지속가능개발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특히 SDGs5과 SDGs16 목표,
즉 성평등과 평화, 민주주의, 인권의 가치 달성에
중점을 두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KOICA는 개도국과의 협력 사업에서
농업, 교육, 보건 분야에 주력해왔습니다.
이 분야는 사회 발전에서 가장 기초적이고,
특히 개도국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이에 비하면 성평등이나 평화, 민주주의, 인권은
가치지향적이고 추상적입니다.
하지만 훨씬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저는 개발협력이
단지 가난을 벗어나게 해주고,
더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성평등하고, 인권을 보장하며,
평화로워지도록 하는 것을 목표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저는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여성성기절제”(Female Genital Mutilation/Cutting)의
관습을 바꾸기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몰리 멜칭(Molly Melching) 여사의 책을 보았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한 가지 질문이 내내 맴돌았습니다.
온갖 위험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아프리카 여성들로 하여금
이 운동에 참여하게 만들었을까.
가장 큰 동력은 인권 교육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고,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을 읽으면서,
스스로 용기를 얻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성평등, 평화-민주주의-인권에 대한 개선된 인식이
포괄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또한 뉴욕에서 체결된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이
지구 건너편 아프리카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된 것처럼,
인권과 평화를 향한 사람들의 연대는
상상 이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2. 한국여성운동과 국제연대
저는 KOICA 이사장으로 오기 전에,
국회의원으로 20년,
그 이전에는 여성운동가로 20년을 보냈습니다.
(제 나이가 몇 살 정도인지 너무 계산하지 마십시오)
1975년 제1차 세계여성대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서구의 대학을 중심으로 여성학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즈음 수많은 여성학 서적들이 한국에 들어왔고,
저를 포함해 많은 젊은 여성들이 그 책을 읽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1977년 미국 개발원조기관인 USAID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 커리큘럼 도입을 지원했습니다.
저는 그 프로젝트의 연구원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82년에는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진보적인 여성운동단체를 만들었고,
이 단체는 여성 노동자, 여성 농민들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일했습니다.
당시는 권위주의 체제라 정부의 탄압이 심했고,
활동과 모금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독일의 원조단체인
EZE(독일개혁교회연합개발원조국)의 지원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때 이 여성단체의 창립 멤버였고,
단체의 중요 임원으로서 EZE의 지원을
가장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저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공여기관과 수원기관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지원금을 주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수원기관을 무한히 신뢰해 주었고,
우리들의 주인의식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또 하나 경험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1995년 베이징에서 세계여성대회가 열렸습니다.
한국 여성계는 대회 1년 전부터 세계여성대회 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분야별 스터디 그룹을 통해 우리의 과제를 도출했습니다.
비행기 값은 각자 저축해서 마련했습니다.
그 저축한 돈으로, 비행기를 통째로 전세 내,
500명이 넘는 한국 대표단이
베이징 현장까지 찾아가 세계 각국에서 온
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서로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공유한 시간은
한국 여성들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주었습니다.
(호주제 폐지운동 사진) 그 이후 한국 여성들은,
한국 가부장제의 적폐가 가장 잘 드러났던
호주제 폐지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또 여성의 정치참여,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여성 성폭력 문제 등을
사회, 정치적 이슈로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에서 보듯이,
여성들의 운동, 경험, 성공 사례들은 분절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구 반대편에 있다하더라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콕스 바자르 캠프에서 만난 여성들
올해 1월 저는
로힝야 난민 100만 명이 살고 있는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Cox’s Bazar)를 방문했습니다.
난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겠습니다만,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가 취사용 가스 버너였습니다.
쌀을 배급받더라도 조리할 연료가 없어서 날 것으로 먹고,
그러다가 병이 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또 여성과 아동들은 땔감을 구하러 가다가
성폭력을 당하거나 유괴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100만 명의 난민이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가는 바람에
울창했던 숲은 민둥산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끔찍했던 것은
여러 로힝야 여성 난민들이
성폭력이라는 지옥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로힝야 사진)
KOICA가 지원하는 NGO 아디(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는
이런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의 심리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여성들이 다른 피해여성들을 상담할 수 있도록
활동가로 만드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한국 NGO ‘아디’의 젊은 활동가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과 정의실현을 위해
지난 30년 가까이 투쟁한
선배 한국 여성운동의 경험에서 배웠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증언한 것은
이들이 2차대전 당시 지옥같은 폭력을 당하고
거의 45년이 지난 1991년이었습니다.
처음 증언에 나섰을 때,
이 분들은 단지 생존자, 피해자였습니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자,
당당한 인권운동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다른 피해자들을 돕는 활동가가 됐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가 인권운동가가 된
故 김복동 할머니는 사재를 출연해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평화나비기금’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금은 베트남, 우간다, DR 콩고 등
분쟁에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위해 소중하게 쓰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인권을 짓밟았던 일본이
쓰나미 피해를 입었을 때도
김 할머니는 지원금을 보낼만큼 숭고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저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30년, 40년이 지나서야
‘증언’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트라우마를 벗어나도록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4. 여성의 역량강화
여러분,
지속가능한 발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저는 사람중심,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로의 발전(People)
전쟁 없는 사회, 나아가 분쟁을 예방해 평화가 지속되는 사회(Peace)
함께 이익을 나누는 번영(Prosperity)
지구의 생태를 지키는 환경보전(Planet)이라고 생각합니다.
4P(People, Peace, Prosperity, Planet)는
바로 지속가능한 발전(SDGs)의 4가지 핵심 축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지금까지의 발전전략과 다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접근법입니다.
따라서 기존의 사회에서 이익을 누려온 사람보다
사회의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이
새 목표(goal)를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게 됩니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가부장제 사회 주변부에 머물던 여성들,
특히 개도국에 살고 있는 다수의 가난한 여성들은
지속가능발전 사회의 수혜자이자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도국 발전 전략은
여성들의 역량강화에 포커스를 둘 때
훨씬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UN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여성들이 남성들과 평등하게 자원에 접근할 때
농지 경작률은 30%까지 증가하고,
이를 통해 1억500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세계은행의 2012년 보고서는
어떤 직업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라질 경우
생산성이 25%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성평등의 달성 없이 지속가능한 발전도 없다’는 선언은
이제 객관적 통계에 의해서도 뒷받침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수의 국제원조기관들은 성평등 전략을 수립하고 있으며,
스웨덴, 캐나다, 호주 등 선진원조기관들이
페미니즘에 기반한 ODA 정책을 수립한 보고서는
KOICA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KOICA는 지난해말,‘성평등 및 여성과 소녀의
역량강화를 위한 중기계획(2019-2021)’을 세웠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이 가정, 마을, 사회, 국가에서
‘변혁의 주체’가 되도록 역량을 키우려고 합니다.
이는 단순히 말뿐인 여성 역량강화가 아니라
성불평등의 원인인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고
공동체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동력을 확보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KOICA는,
△우간다 난민정착촌 여성 경제적 자립지원사업
△팔레스타인 제닌 청소년센터 건립사업
△코드디부아르 누공 치료사업 등에서
성공적 사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아프리카 가나에서,
그 동안 남성의 영역으로만 인식됐던
‘전자정비 분야’에서 여성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직업훈련사업을 했던 것처럼
혁신가로서 여성이 가진 잠재력도 키워갈 것입니다.
5. 맺음말
지난해 UN총회에서 제가 느낀 소회를 전하며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UN총회 연설에서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국제환경을 만들기 위해
개발협력 규모를 꾸준히 확대하겠다”면서
“한국 정부는 실질적 성평등 실현을
주요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저도 UN총회에 참석하면서,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인사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성평등’에 대해 말했습니다.
저는 한국에 돌아와서
“내가 UN총회에 가보니,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없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더라.
지도자는 성평등 인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지속가능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가장 강한 에너지는 여성에서 나온다는 믿음도
더욱 강해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여정은
여성의 참여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를 위해 여성들은 뜻을 같이하는 모든 세력들과
연대해 나가야한다는 것입니다.
성평등 실현을 통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한국을 대표해 KOICA가 앞장설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KOICA의 길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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