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개발협력 분야에서 ‘슈퍼파워’(초강대국)이자 글로벌 중추국가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위기를 겪는 개발도상국이 많지만 이 나라들도 언젠가는 한국처럼 발전할 것이라 믿습니다.”
나탈리아 카넴(Natalia Kanem) 유엔인구기금(UNFPA) 사무총장이 지난 3월 6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한국국제협력단(이하 코이카) 본부를 방문했다. 유엔인구기금은 ‘모든 임신이 환영받고, 모든 출산이 안전하게 이루어지며, 모든 청소년의 잠재력이 실현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to deliver a world where every pregnancy is wanted, every childbirth is safe and every young person's potential is fulfilled)’ 임무를 수행하는 유엔의 대표적인 성·재생산 건강 기구이다. 유엔인구기금은 1974년부터 한국과 협력 중이며, 1970년대 한국의 인구정책, 인구계획, 가족계획, 인구조사 등을 지원해왔다.
코이카와 유엔인구기금은 이날 향후 3년 동안 아프리카, 중동 등 분쟁취약지역에서 성폭력을 예방하고 성폭력 생존자를 돕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카넴 사무총장은 “코이카와 향후 3년 동안 아프리카, 중동 등 분쟁취약 지역에서 성폭력을 예방하고 여성 및 소녀들의 성·재생산 건강을 지원하는 인도주의 프로젝트를 3,270만 달러(약 425억 원) 규모로 진행한다”라며 “이번 사업을 통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소말리아, 남수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6개국에서 약 70만명이 지원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Q한국 방문은 몇 번째인가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사무총장 자리에 오른 2017년 국제 인구 컨퍼런스와 저출산∙고령화 국제 심포지엄에 참여하기 위해 처음 한국을 방문했고, 2019년에는 유엔인구기금 서울사무소 개소식에 참여했습니다.
Q현재의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유엔인구기금 사무총장으로서 한국의 인구학적 변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은 20세기 초반 서양의 의학과 보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사망률이 급감하고 평균 기대수명은 급증했습니다. 출산율이 가장 눈에 띕니다. 2022년 기준, 한국은 0.7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했습니다. 인구학적인 문제를 악화시키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양한 내·외부 위기를 극복해 온 역사와 그로부터 파생된 회복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인구학적인 위기 역시 극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Q코이카와 유엔인구기금 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코이카와 유엔인구기금은 2007년부터 성·재생산 건강 및 권리(SRHR: Sexual Reproductive Health and Rights), 모성보건 및 젠더기반폭력(GBV: Gender-Based Violence) 부문에서 진행해온 협력을 더욱 확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분쟁 및 취약국 지원 프로그램’은 에이즈를 비롯한 성질환 진단·치료, 피임법 교육을 통한 성·재생산 보건 서비스 확대와 젠더기반폭력 예방 및 대응 서비스의 접근성 향상이 목표로, 임산부와 신생아의 생명을 구하고 인도주의적 환경에서 여성들과 소녀들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사업입니다.
Q지원국은 어디인가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소말리아, 남수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6개국입니다. 우선 아프리카 지역의 4개국에 걸쳐 총 65만 3,627명의 사람들이 344개의 보건 시설을 통해 성·재생산 보건 서비스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중동 지역에서는 4만 2,000명 이상이 14곳의 보건시설을 통해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Q그간 코이카와의 협력 사업을 통해 얻은 성과를 말씀해주세요.
코트디부아르에서 진행한 누관질환 치료 사업이 대표적입니다. 할례를 경험한 여성은 난산 시 방광이나 장에 구멍(누관)이 생기면서 대소변이 질로 흘러내리는 ‘산과적 누공’을 앓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7년 코이카와 누관질환 치료 사업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총 27건(2024년 기준)의 다양한 사업을 함께했습니다. 현재 계속사업도 총 20건으로 1억 1,600만 달러 규모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밖에 신규 분쟁취약국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3,270만 달러 규모의 사업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Q분쟁지역에서 다자협력 사업 진행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지난 35년간 일하면서 느낀 점은 현지 주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코이카는 일회성으로 접근하거나 문서상으로만 기획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에 직접 관심을 보이고 필요할 때 직접 개입하는 부분이 상당한 강점입니다. 빈곤국이나 개도국에서 일할 때는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질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매우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가 필요하며, 코이카는 그런 면을 충분히 인식하고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한국에서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출산 기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산율의 지속적인 하락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현상입니다. 최근 칠레의 출산율 하락을 조명한 한 매체의 기사도 있었습니다. 개인적 부담을 덜어줘야 출산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부담을 느끼는 요인을 조사하면 경제적 비용과 좋은 부모가 돼야 한다는 감정적 소모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여성은 경제적 활동이 왕성한 시기와 가임기가 겹치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에게 최적의 결정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할 자격이 있습니다.
Q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여성의 워라밸이 적절하게 작용해야 하며 남성에게도 출산 휴가와 주말에 자녀들과 놀아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결혼을 하면 집안일이라는 일종의 ‘세컨드 잡’이 생기는데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공정해야 합니다.
Q구체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유엔인구기금에서 민간기업과 함께 저출산 관련 프로젝트를 시행한 적이 있습니다. 직장 내 수유실을 만들고, 임신 기간에 정기검진을 할 때 동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제도 등을 실행했더니 결과적으로 회사의 생산성에 도움이 되고 인재 유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유엔인구기금의 ‘The Coalition for Reproductive Justice in Business’를 참고해 보면 좋습니다.
유엔(UN)의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17개 중 가장 핵심은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개최한 첫 국제인구개발회의(ICPD : International Conference on Population and Development)에서 채택된 ‘ICPD 행동계획(ICPD Programme of Action)’은 기존의 수치화된 인구 목표를 지양하고, 모든 부부 및 개인이 자녀의 수, 자녀를 가질 시기 등에 대해 자유롭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 등을 인정하는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였습니다. 유엔인구기금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말자(Leave No One Behind)’는 메시지를 내세웠으며 거기에는 임산부와 어린이가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는 여성의 출산율, 자기결정권 등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